퇴근길, 붐비는 버스 창밖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저마다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늘 익숙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쓸쓸한 풍경이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자, 텅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익숙한 침묵뿐이다. 현관에 놓인 가지런한 신발들과 텅 빈 거실을 둘러보니, 문득 혼자라는 사실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가방을 내려놓고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어제 저녁에 남은 김치찌개와 몇 가지 반찬들.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하루 동안 굳어있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듯하다. 따뜻한 밥과 찌개를 천천히 음미하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조용히 되새겨본다. 아침에 마주쳤던 옆집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 점심시간 동료들과 나누었던 웃음 섞인 이야기, 오후 회의 시간에 떠올랐던 기발한 아이디어.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도 문득 반짝이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한 후, 습관처럼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집중이 되지 않는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결국 전원을 껐다. 조용한 거실에 홀로 앉아 있자니, 문득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 떠오른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매일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여행일지도 모른다.
창밖은 이미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고,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만이 희미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책상 위에 놓인 일기장을 펼쳐본다. 오늘 하루 느꼈던 소소한 감정들, 떠올랐던 생각들을 몇 줄의 글로 옮겨 적는다. 거창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렇게 기록해두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은 이렇게 말했다. “오, 나날들이여, 그대들은 어디로 사라져 가는가? 그리고 나 또한 그대들과 함께 사라져 가는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붙잡을 수 없는 순간들을 이렇게라도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일까.
따뜻한 차 한 잔을 더 우려내어 천천히 마신다. 쌉싸름한 차 향기가 온몸에 퍼져나가는 듯하다. 문득, 오늘 하루 나를 웃게 했던 작은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길을 걷다 마주친 활짝 핀 꽃, 좋아하는 노래의 첫 소절, 퇴근길에 우연히 발견한 예쁜 카페. 거창한 행복이 아니어도 괜찮다. 이렇게 소소한 기쁨들이 모여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것을. 텅 빈 집 안의 익숙한 침묵 속에서, 나는 오늘 하루의 작고 소중한 순간들을 조용히 되새기며 내일을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