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듯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잠들기 전 습관처럼 베란다로 나왔다. 밤공기는 제법 선선했고,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자동차 소리와 간간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도시가 아직 잠들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촘촘히 박힌 별들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고, 아래로는 수많은 불빛들이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빛나는 건물들과,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차량들의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미국의 작가, E.B. 화이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뉴욕을 세 가지로 생각한다. 첫째는 섬 자체의 노출된 윤곽, 둘째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간의 축적, 셋째는 밤의 빛.” 비록 이곳은 뉴욕은 아니지만, 밤의 도시가 가진 그 묘한 매력과 활기는 어딘가 닮아있는 듯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고 있겠지.
오늘 하루를 되짚어본다. 아침부터 시작된 업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동료들과 함께 힘을 합쳐 결국 해결해냈던 순간의 안도감. 퇴근길,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따뜻한 라떼를 마시며 잠시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소소한 행복.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며 가족들과 나눴던 평범한 대화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그 속에는 작은 기쁨과 감사함이 숨어 있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수많은 광년 떨어진 곳에서 빛나는 별빛이 지금 내 눈앞에 와닿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문득, 우리의 삶 또한 저 별빛처럼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시인, 김소월은 노래했다. “살아온다는 것, 그것은 순간순간 의미를 만들어가는 일.” 우리의 매일매일은 그렇게 작은 의미들을 쌓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도시의 야경은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밤공기는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이제 슬슬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베란다 문을 닫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으니, 오늘 하루의 잔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소소한 기쁨과 작은 깨달음들이 뒤섞인 평범한 하루. 내일은 또 어떤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될까. 조용한 밤,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기를 바라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