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내내 쏟아지는 햇볕을 피해 커튼을 드리운 채 낡은 책상 앞에 앉았다. 서랍 정리를 하다 문득 손에 잡힌 빛바랜 사진 한 장. 십여 년 전, 친구들과 떠났던 어설픈 첫 해외여행의 기념사진이었다. 촌스러운 옷차림과 어색한 미소, 풋풋했던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 속의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젊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 시절 함께 겪었던 사소한 에피소드들, 밤새도록 나누었던 꿈 이야기들이 문득 떠올라 옅은 미소를 짓게 했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갔고, 우리는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진 속의 끈끈했던 우정은 여전히 마음 한켠에 따뜻하게 남아있다. 문득, 미국의 작가 랠프 왈도 에머슨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공유하는 기억이야말로 진정한 재산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를 연결해주는 끈이다.” 빛바랜 사진 한 장은 그 연결고리를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사진을 조심스럽게 책상 한쪽에 놓아두고 다시 서랍 정리를 시작했다. 오래된 편지들, 낡은 다이어리, 의미를 알 수 없는 작은 기념품들. 버려야 할 물건들과 남겨두어야 할 물건들을 분류하며, 지나온 시간들의 흔적을 더듬어본다. 문득, 어린 시절 아끼던 곰 인형의 낡은 단추 하나가 손에 잡혔다. 닳고 닳은 그 작은 조각에서 잊고 있었던 따뜻한 감촉이 느껴지는 듯했다.
점심시간,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창가에 앉아 먹었다.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창밖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나뭇잎들은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평온해 보인다. 문득,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구절이 떠올랐다. “작고 사소한 아름다움들이야말로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진정한 보석들이다.” 낡은 사진 한 장에서 비롯된 과거의 기억과, 창밖의 평화로운 풍경이 오늘 하루의 작은 위로가 되어주는 순간이었다.
오후에는 밀린 업무들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집중하다 문득 고개를 들면, 책상 위에 놓인 빛바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시절의 풋풋했던 열정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힘을 내본다. 저녁 무렵, 퇴근길에 좋아하는 꽃집에 들러 작은 꽃 화분 하나를 샀다. 낡은 책상 한켠에 놓아두니, 칙칙했던 공간에 작은 생기가 더해지는 듯했다.
텅 빈 방 안, 은은한 꽃 향기가 퍼져나간다. 오늘 하루, 낡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나에게 작은 위로와 힘을 주었다. 그리고 새로 놓인 작은 꽃 화분은 앞으로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또 다른 소소한 기쁨을 선사해줄 것만 같다.